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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는 것

Jayee 2025. 1. 10. 17:11

 

뉘앙스 - 성동혁

 

 

닳는 것

 

 

4년 전에 8만 원 주고 샀던 가죽 패딩의 목 부분이 다 해져버려서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다.
샀을 때의 설렘이 잊히기도 전에 닳아버린 목 부분이 어쩐지 마음을 쓰이게 하는 날이다.
매년 겨울,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에 늘 1순위로 골라 입었고
내가 가진 옷들과도 다 잘 어울려 주었던 기특한 패딩이었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고 정말 잘 입었기 때문에 버려도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 편하게 여기저기 던져 놓고, 끄집어내 입고, 옷걸이에서 세게 잡아당기기까지 했는데도
지금은 다른 외투를 고르며 그 비싸지 않은 패딩을 떠올리는 내 자신이 미련스럽다.
똑같은 디자인을 찾아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고, 너무 많이 입고 다녔던 탓에
다시 같은 걸 사기에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많은 시간을 외투 생각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상한 마음이다.
아까움보다 더 진한 감정이 이 옷에 얽혀 있다.
이제 다른 외투를 입으면 되는데, 다른 외투들은 그만큼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나가기 전에 어떤 외투를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엔 늘 가죽 패딩에 대한 생각이 끼어든다.

이 옷으로 나는 하루하루 외투 고민을 덜어왔고,
그 시간이 쌓여 수만 시간이 되어버렸기에
지금 내 일상의 작은 축 하나가 흔들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요즘 들어 이별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깊게 자리 잡는 것 같다.
이별하는 꿈을 꾸고 나면 갑작스러운 불안에 눈을 뜨고,
서둘러 핸드폰을 찾아 내가 잠든 사이의 흔적들을 확인한다.
또 다른 이별을 마주하며 서글픔과 불안이 몰아치는 밤이 반복된다.

 

 

어렸을 때, 이별은 단순히 연인 사이의 이야기라고 여겼다.
내 일상은 여전할 거라는 믿음이 단단했고,
매체에서 들려오는 이별 노래는 그저 가볍게 흘려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이별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내 일상이 여전할지 알 수 없고,
내일이라도 소중한 누군가가 사라질 수 있으며,
이 평온함이 한 번의 이별로도 송두리째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알고 싶지 않았던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밀려오는 걸 보니 알면서 외면하고 살았던가.

 

 

이별을 인지한 채로 일상의 소중함을 크게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
듣기에는 낭만적이고 괜찮아 보이는 감정이지만,
이별을 자꾸 의식할수록 일상이 소중해질수록
그 소중함은 고통이 되어 날 갉아먹는 것 같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오늘 하루가 무탈했음을 안도하고,
곧장 내일의 불확실성에 불안이 차오른다.

하루가 무탈하길 바라면서 하루를 보내는 내가 여전히 어리석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