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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디하다는 착각』

Jayee 2024. 9. 6. 17:35

 

 

나는 내가 트렌디하다고 생각했다. 아, 착각했다.

나는 트렌드를 잘 아는 사람이긴 하다. 근데 그걸 모조리 피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나와 같은 길을 오래 걸어가면 나는 그 사람을 피해서 다른 길로 빠져서 걸었다. 그게 설령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그냥 그 사람과 같이 걷는 순간이 불편하기도 했고, 내 집이 노출되는 것 같기도 했고... 그 사람의 앞에서 가면 계속 내 뒷모습이 관찰당하는 것 같아서 그게 은근히 불편했다. 돌아서 혼자 나만의 길을 가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고 고요했다. 


 

나의 이 습관을 며칠 전에 문득 깨달았다.

채용공고들을 보니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라는 문장을 보고 잠시 뇌가 굳었다.

'트렌드에 대한 이해' ?

 

이해는 한다. 사회문화적 현상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사람들의 소비나 생활습관의 변화를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따라가지 않으려는 '반항아'의 기질을 타고난 것 같다.

사고 싶던 티셔츠가 있었는데, 그걸 트위터나 인스타에서 바이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면 나는 사지 않는다.

갖고 싶은데 흔한 게 싫은 그런 단순한 맥락이 아니라... 그냥 갖고 싶은 마음과 예뻐 보였던 그 모든 감정이 물거품처럼 파바박 터지는 느낌?

바이럴이 시작되면 그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들이 더 이상 나의 구매욕에 와닿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에 누군가가 입는다면 나는 저항 없이 그 상품과 멀어져 버린다. 이게 희소성이 떨어져서 마음이 멀어지는 거라고 하던데 그런 걸까? 이런 나의 성격은 충동구매와도 가까울 수가 없다. 늘 장바구니에 가득가득 담아두고, 확신이 생길 때까지 지켜본다. 그 확신은 주로 한 명이 남긴 한 줄의 리뷰에서 온다. "리뷰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질이 좋아요." 같은 문장 한 줄이면 최고다. 내가 사진으로는 얻을 수 없는 소재와 같은 정보를 긍정적으로 남겨주는 사람은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얻은 물건은, 나와 5년 이상은 기본으로 함께 간다.

나는 오래, 내 곁에서, 높낮이 없이 편안하게 오래갈 상품을 좋아한다.

 

한 번은 장화를 사고 싶었던 적이 있다.

조심성 없이 물웅덩이에 발을 몇 번 담그고 나서, '아 진짜 장화하나 마련할까.' 하고 엄마 따라 간 시장에서 계속 장화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장화가 유행을 시작했다. 내가 시장에서 봤던 1만 5천원의 장화보다 세련된 장화들이 10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내 눈앞에 들이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장화, 물웅덩이에서 나의 양말을 젖지 않게 해주는 장화를 사고 싶었는데, 그 장화들이 갑자기 못생겨 보이고 이 장화들이 갑자기 정 없이 비싸 보이고 나는 그 어느 것도 살 수 없는 길 잃은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난 여전히 장화가 없다.

(쩜 바보같나... 쩜...매력있기도 한듯)

 


 

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무섭다.

그냥 그렇게 가다 보면 다 같은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만족할까?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는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나만의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하는 생각들을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니 결국 나온 답은 '나는 나를 공부하는 것이 첫 번째다 !' .

학교에서 짜인 시간표에, 짜여진 급식, 짜여진 옷을 입으며 살다가 갑자기 나와보니 혼자서는 방향을 잡지 못하는 어리바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정해져 있다는 듯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시간이 흘러가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가던 길에 들어서도 다른 길로 빠져버렸던 내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고 있는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건 나에게 최고로 어려운 일이었고, 두려웠고, 결정적으로 그러기 싫었다.

나는 나를 공부해서, 나의 성격, 나의 체질, 나의 취향을 모조리 연구해서, 나에게 최적의 길을 최적의 이동수단을 타고 최적의 의식주를 차곡차곡 서서히 꾸려나가고 싶다. (느려도 괜찮다. 오랜 불안 끝에 희미하게 얻은 답이다. 느리면 뭐 어땨용...마인드)

그렇게 나만의 길을 만들다 보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와 길이 겹쳐서 쉽게 친해지고, 또 다른 길을 알게 되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 나가지 않을까. 지쳐서 힘들면 내가 만든 길에서 누워 쓰러지고 싶다. (그럼 적어도 뒤에 오던 누군가에게 밟히지는 않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가는 이 길들은 전부 내가 걷기 싫었던 길은 아니니까, 잠시라도 내가 걷고 싶었던 길들이니까! 언제 이 길이 끊길지, 이 길이 어디로 갈지 불안해하면서 걷지 않고 내가 걷고 싶었다는 그 마음하나만 믿으면서 계속 걸어 나가는 것, 나로서 살아가는 것,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채우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삶의 여정인 것 같다. 

 

'아니오'는 잘하는데... 성공도 하면 조켄네